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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 홍길동 21부를 보기 전에 권하는 나대로 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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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 홍길동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존재는 길동의 아버지 이판대감이다. 그는 권력을 잡기 위해 자신의 절친한 친구와 그 가족들을 몰살했다. 그리고 살인을 우습게 아는 폭군 광휘가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인품은 그가 속한 위치와는 너무나 다르다. 일체의 뇌물은 거절하고 왕에게 직언도 서슴지 않는 강직한 선비의 모습이다.

이판은 건전보수를 상징하는 걸까? 그러나 그렇게 보기엔 그의 원죄가 너무 크다. 많은 사람을 희생시켜가며 끝까지 지키려는 폭군 광휘의 난행이 도저히 그에게 '건전'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이판이 광휘의 측근을 넘어서 멘토 수준임을 볼 때 이판의 위치와 성향의 불일치는 이념이 아니라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둘의 깊은 관계가 이판이 '폭군'을 옹호하게 만든 것이다.

광휘와 이판, 어울리지 않는 이 둘이 어떻게 관계를 맺게 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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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부인

이판은 길동의 어머니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스님의 증언에 따르면 길동의 어머니 무덤 앞에서 하루 종일 바라보다 간 적도 있다고 한다. 김씨부인도 길동을 남다르게 대하는 이판에게 "길동 어머니에게도 그려셨어요"라며 이판이 길동의 어머니를 사랑했음을 확인한다.

사랑하는 여인이 낳은 아들 길동이. 그 여인만큼이나 이판은 길동을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국법은 이판의 길동에 대한 사랑을 금지했다. 그는 길동을 불러다 괜히 담뱃불이 붙이게 하곤 벌을 손 저어 좇아낼 정도의 사랑표현밖엔 할 수 없다.

사랑하는 여자를 사랑할 수 없는 현실이 이판은 괴로웠을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가 정부인(김씨부인)의 손에 죽어가는 걸 그냥 못본 척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미치도록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 사랑하는 여인이 낳은 길동을 또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 싫었을 것이다.

그의 길동 어머니와 길동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루어지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한 데에 대한 절망감이 서자 광휘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 것이다. 사가와 왕가의 법이 달라 왕가엔 혈통의 제한이 없으므로 그는 서자인 광휘를 길동대신 맘껏 임금으로 사랑할 수 있었다. 길동을 사랑할 수 없는 이판은 광휘에게 길동에 대한 사랑을 전이 한 것이다.

이판의 실명을 안타까워 하는 주위의 우려에 이판은 만족스런 목소리로 한마디 한다. "보고 싶은 것을 다 봤다."(맞나?) 이판은 실명하기 직전 사랑하는 길동과 길동에 대한 사랑을 전이한 임금 그 둘만 보았을뿐이다.(20회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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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휘의 어머니 대비마마가 불에 타 숨진 때와 길동의 어머니가 김씨부인에 의해 죽은 때는 거의 비슷한 시기다. 이판은 사랑하는 길동 어머니 무덤 앞에서 자신이 세상을 바꿔보겠노라고 다짐했을 것이다. 그래서 대비마마를 태워 죽이고 절친한 친구까지 찔러 죽이면서 광휘를 택했을 것이다.

처음 왕위를 계승하고 광휘는 이판에게 신분으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얘기를 한다.(정확하진 않지만 그런 뉘앙스) 이 말을 하며 광휘는 들떠있다. 이판도 광휘의 얘기를 듣고 흐믓한 웃음을 짓는다.

광휘 : 나는 말이네. 출신의 비천함으로 나를 무시하고 깔보는 이들에게 보이기 위해서라도 좋은 왕이 될거네.  임금인 내가 비천함을 딛고 일어섰을때 백성들도 그리 할 수 있지 않겠나.  

이판 : 끝까지 세자 전하를 지키고 보필하겠습니다.  

광휘 : 그래. 자네가 끝까지 보고 날 지켜주게.



이판이 광휘를 그냥 사랑한 건 아니다. 광휘는 세자이면서도 왕위에 위협을 느낀 서자이다. 이런 아픔을 가진 광휘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막는 이 세상의 부조리를 개혁하고 싶었을 것이다. 길동이와 길동이 어머니를 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적자인 창휘보다 서자인 광휘가 더 나을 거라고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광휘는 왕위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의 '서자'라는 타이틀 자체가 명분을 많이 깍아먹는데 왕위 차지하는 과정에서 또 정당성을 상실했다. 거기다 광휘는 위험한 개혁까지 꿈꾸었다. 아마 광휘는 지배층과 유생들에 의해 곧 고립되었을 것이다.

"정치는 당신들이 하는 거잖아"라는 광휘의 비웃음에서도 그가 궁에 고립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왕을 보고 나온 길동도 창휘에게 그와 비슷한 걱정을 말한다. "지금의 왕처럼 미쳐버리지 않을 자신 있어?"

광휘에겐 정치말고 모든 것이 허용된다. 그는 향락과 섹스에 빠져버린다. 권력의 핵심들은 이런 왕의 향략을 방치한다. 기득권층은 왕(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통제한다. 그들은 왕이 정치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왕이 스스로 향략에 빠지다니 좋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판은 자신의 선택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이제 곧 왕위를 내려올 왕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고 떠난다. 광휘는 자신을 두고 떠나겠다(죽음)는 이판에게 "이제 그만 놓아버리고 싶은 거야. 이판은 끝까지 지켜보며 나를 이 자리에 둔 것을 후회해야 한단 말이야."라며 절규한다. 그러나 뿌리치는 이판. 광휘는 이판이 있었기에 살 수 있었다. 자신의 정당성을 보장해준 이판이 사라진 광휘는 이제 허수아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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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은 죽기 전 길동에게 찾아와 자신은 자신의 왕을 끝까지 모시지 못하고 포기하지만 "넌 잘 모시라"는 말을 남기고 간다. 그리고 이판을 이용해 길동을 막으려는 사람들을 걱정해서 길동에게 자신도 천륜을 모르니 "너도 천륜을 따르지 말라고" 말한다. 이판은 광휘를 포기하는 대신 이제 길동의 세상에 기대를 걸고 떠난다.

드라마는 막판으로 오면서 명분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 대군세력을 이끄는 대감은 왕인 광휘의 명령을 명분이 없다고 잘라 버린다. 광휘가 왕권을 위협받고 고립 된 것은 명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노객주는 민심의 지지를 받는 홍길동을 두고 민심만으로 왕이 될 수 없다며 홍길동에겐 명분이 없다고 말한다. 길동도 자신이 왕이 될 명분이 없음을 알고 창휘를 도운다. 창휘의 왕위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대규모 군사가 아니라 사인검이라는 작은 칼에 적힌 명분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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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이 있어야 왕이 된다. 이 말은 명분이 없는 자는 왕을 꿈꾸지도 말라는 소리다. 드라마가 명분을 조명하는 부분은 그 필요성이 아니라 명분을 가지지 못한 자의 좌절이다. 명분은 지배층을 위한 것이다. 기득권은 자신의 이익을 명분으로 포장해 피지배계층에게 강요한다.
 
기득세력은 서자는 관직에 오를 수 없다는 법을 만들어 그 명분으로 서자의 진출을 통제한다. 서자의 관직 배제는 너무나 많은 양반으로 인한 경쟁의 격화를 방지하기 위해 적자들이 만든 배제의 제도이다.

오늘날 지배계층은 19세의 수능성적으로 배제시키는 학벌주의를 만들어냈다. 학벌은 이 사회의 중요한 명분으로 작용한다. 대학의 서열이 낮으면 그만큼 기회를 얻지 못하는 걸 당하는 사람이나 이득을 보는 사람이나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게 학생 때 공부 잘하지"란 말이 아주 쉽게 나온다. 그러나 19세의 수능성적으로 구성원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경쟁'이 아니라 '배제'일뿐이다.

명분은 칼도 아니면서 군사도 아니면서 이렇게 사회를 확실히 지배한다. 창휘가 높이는 사인검은 민중의 삶과 아무 관계 없는 그들의 명분일뿐이지만 그 명분이 세상을 움직인다. 수능성적이라는 명분이 한국인의 평생을 지배하듯이.

역사와 현실에 대한 홍길동의 통찰은 깊고 넓다. 이건 홍자매에게 기대하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래서 더욱 놀랍다. 도대체가 어느 것하나 뺄 것이 없는 드라마. 20부가 되어도 힘이 넘쳐난다. 이해해줄 것도 없이 스스로 튼튼히 서 있는, 시청자에게 조금도 안스러움을 주지 않는 드라마. 오랜만에 제대로 보는 후련한 명작이다.

* 광휘의 연기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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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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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왕꽃윤씨 2008/03/13 15: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다란님 글 퍼가도 될까요. 물론 출처는 반드시 밝힐겁니다^^

    • 2008/03/13 2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얼마든지요. 전 제 글 퍼가는 거 좋아합니다. 제 블로거 링크는 하나 찍어 주시고요. ^^

  2. 바람꽃 2008/03/14 2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잘 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판의 역할은 참 어려운 배역이 아닌가 싶네요. 길용우 님께서 잘 소화하셨지만 말이죠. ^^

    '미워할 수 없는 충신'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이판이 택한 임금이 광휘가 아닌 창휘였어도 .. 이판은 충신의 모습으로 임금의 곁을 지켰을 거란 생각입니다. 자신이 선택한 임금 .. 그리고 그 임금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는 불충 .. 그리고 그 선택에 자신의 죽음으로서 마지막 충성을 다하는 그 모습, 신하로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에 깊은 감동 .. @@


    요즘 정치판에 .. 저런 이판 같은 자가 있다면 말이죠.
    정당이 어떻든 간에 .. 지켜볼만 한 정치인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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